역사로 보는 세상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요약 7편(7. 학자, 철학자, 수피) 본문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저
이 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요약한 내용입니다.
7. 학자, 철학자, 수피
무함마드가 생전 정립한 무슬림의 다섯가지 의무 : 실천적 성격
샤하다: 신은 오직 한 분뿐이며 무함마드는 신의 사도라고 증언하기
살라트(나마즈): 매일 다섯 차례 정해진 기도 의식 올리기
자카트: 매년 재산의 일정 비율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기
소움(로자): 매년 라마단의 달에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하기
하지: 가능하다면 일생에 적어도 한 번 메카로 순례여행 가기
무함마드가 생전에는 가르침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음.
하지만 무함마드가 죽고나서 다양한 사례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했음
→무함마드 이후 칼리프들 쿠란 판본 정리하는 작업함
하지만 쿠란 역시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명시하지는 않았으며 구절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있었음
학자
쿠란의 모호한 구절에 대한 해석 필요
→ 칼리프 우마르 방향 제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무함마드가 다룬 적이 있었나? 그는 어떻게 결정했나?"(키야스: 유추에 근거한 판단)
→ 무함마드가 말하거나 행한 모든 것 수집 : 하디스
- 하디스
믿을만한 출처 필요
우마이야 시대 학자고용하여 하디스의 진위 여부 판별함
진위여부를 판별하는 과정이 엄격한 학문으로 성장함.(그 경로 밝히고 모든 연결고리가 진실임을 입증)
우마이야 시대 후기-아바스 시대 하디스를 주제별로 분류하는 작업 시행함
하디스 모음집 중 여섯본만 정본으로 공인받음
하지만 쿠란과 하디스를 합쳐도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었음
→ 쿠란과 하디스에 통달한 학자가 논쟁에 대한 독자적인 결정 내릴 권한을 가짐
이 때 학자 역시 키야스(유추법)에 근거를 두고 판단해야 함
→ 키야스 적용이 애매할 때에는 이슬람 공동체에서 합의한 내용인 이즈마로 결론 내림
→ 결국 이슬람 학자는 쿠란, 하디스, 키야스, 이즈마, 선례들까지 뒤진 후 '이즈티하드(이성에 따른 독립적 사고)' 가능함
→ 이슬람력 3세기 말 구조적 법규: 샤리아 윤곽 구성
→ 수니파는 이 법규가 네가지 판본(하나피, 말리키, 샤피, 한발리 학파)으로 나았고, 시아파에서도 그들 나름 판본을 하나 더 만듦.
→ 각자 법규를 발전시키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울라마'라는 학자 계층 배출함.
울라마: 법 제정, 법정 움직이고 교육체제 운영하는 역할, 어마어마한 사회적 권력 행사, 공동체 내 행동과 판단 검열
이 때 이 울라마는 울라마 내 사람들의 존경으로 인정받았고(임명X) 이미 확고해진 기존의 교리의 흐름을 따름.
철학자들
아랍인 수중으로 들어간 알렉산드리아에는 훌륭한 도서관과 학교가 있어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지적 수도 역할을 하였으며 그 곳에는 많은 사상가들이 몰려있었음.
(이 때 당시 로마는 죽어 있었으며, 콘스탄티노플은 지식인의 중우정치로 타락한 상황)
→ 무슬림 이 곳에서 플로티누스의 저작 발견
→ 알라의 유일성을 플로티누스의 단일 존재 개념(만물이 유기체로 연결되어 하나로 합쳐짐, 그 존재에서 만물이 나옴)으로 이해
→ 이를 통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연구함.
아바스 왕조의 귀족들은 그리스 사상에 관심이 많았고 전문 번역가들이 수도 바그다드에 몰려듦.
→ 무슬림 철학자들: 영성과 이성 결합하여 우리의 본질이 추상적인 개념과 원소로 구성되며 이는 이성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함.
→ 수학 발전: 그리스인 기하학 발전, 인도 0개념 창안, 바빌로니아 자릿값 발견, 무슬림 이 모두를 체계화하여 대수학 만듦
→ 실용적 문제: 이븐 시나(해부학, 질병 치료법 연구)
→ 화학 분야 발전
그렇다면 왜 이슬람에서 과학이 탄생하지 못했는가?
- 과학과 신학의 상호작용:
초기 단계 과학 신학에서 풀려나기 어려웠음.(예: 갈릴레오)→이후 서구 사람들은 과학읜 자연의 원리, 종교와 철학은 도덕성과 윤리의 가치로 각각 다른 분야임에 동의하여 합의점을 찾음
하지만 9-10세기 이라크에서는 종교에서 벗어난 이런 과학 존재하지 않음
이성을 적용해 연구하는 방식인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는 있었음
무타질라 학파: 무거운 죄를 지은 무슬림이 믿음과 불신 사이 제3의 구역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사람 있었음
→ 제3의 구역 개념에서 '분리주의자'라는 뜻의 무타질라 학파 나옴
→ 이들의 주장: 이슬람의 핵심은 '타우히드' 알라가 전체로서 존재하고 유일하며 보편적임.
그러므로 쿠란은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 아니어야 함. 알라가 창조한 것이므로 해석, 수정 가능
선과 악, 옳고 그름은 신의 변하지 않는 실재가 단편적으로 드러난 것이며 이는 이성으로 찾아낼 수 있음
이성을 도의나 윤리에 관한 진실을 발견하는 탐구 방법이라고 이야기함.
이러한 믿음때문에 철학자들과 울라마는 충돌함
→ 이성을 통해 법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면 울라마는 무의미해짐
→ 대중들은 울라마에 충성/ 반면 법정, 황실가족, 귀족, 고위 관료들은 무타질라 학파 선호
→ 무타질라 학파는 정부 권력 동원하여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 박해
→ 이러한 무타질라 학파의 힘을 약화시켰던 정통파의 인물 '아흐메드 이븐 한 발'
아흐메드 이븐 한 발
이슬람력 164년 바그다드에서 탄생/ 정통학파
아바스 왕조에 대한 환멸 느낌 → 이슬람이 타락했으며 움마가 길을 바로 잡지 않는 한 지옥으로 향한다고 설교
→ 구원받기 위해 새롭게 도입한 것들을 없애고 무함마드의 자취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
유추법 강등하여 오직 쿠란과 하디스에 기대라고 말함
→ 제국 법정에 소환되었고 신학자와 논쟁 벌임 → 당국 이븐 한발 감옥에 가두고 탄압 → 아바스 왕조에 반발하던 시민들 그를 지지 → 시민들의 눈치 볼 수 밖에 없었던 아바스 법정 : 이슬람 철학과 그리스 사상에 조건 달았음
→ 이후 칼리프들 무타질라 학파 강등, 이븐 한 발의 명예 높임 → 정통파 학자들의 지위가 올라감
→ 정통파의 체계는 무슬림 지식인들이 계시를 참고하지 않고도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능력 말라붙게 함.
수피들
수피: 구도자들/ 영적 계시를 통해 초월하기를 원하여 수행함.
스승에게서 예비 수피교도(무리드)에게 깨달음 전파해가는 방식(시인 라비아가 수행하자 그 주변에 구도자들이 몰려듦)
하지만 법학자들이나 정통파학자들은 수피를 곱게 보지 않았음. (특히 10세기 말 할리지 때 절정)
11세기 중반 무슬림은 학자(신학자-교리, 율법 다듬음), 철학자(과학자-자연의 패턴과 원리 이해), 수피(신과 하나가 되기 위해 수행) 각각 존재함.
이 때 이 인물이 등장함.
아부 하미드 무함마드 알 가잘리
: 20대 초반에 최고의 울라마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음.
1) 아샤리 학파의 논쟁 도움
당시 아샤리 학파는 무타질라 학파와 경쟁하기 위해 이슬람 신학을 다듬음
아샤라 학파: 신앙이 이성에서 나올 수 없으며 오직 계시를 기반으로 삼음. 이성은 계시를 뒷받침할 뿐,
하지만 무타질라 학파가 그리스식 기교로 아샤라 학파 헤매게 함.
이 때 가잘리가 무타질라 학파처럼 수사학 섭렵하여 아샤리 학파 도움.
2) 첫번째 저작
그리고 그리스 철학에 대한 책 <<철학자들의 목표>> 서술
: 이 책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다룸. 이 책 유럽으로 전해짐.
당시 서유럽 사람들은 로마 제국 멸망 후 고대 그리스어도 잊어버린 상태였음
일부 책 읽을 수 있는 유럽인이 감탄했고 유럽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독보적인 권위자로 인정받게 됨.
3) 두번째 저작
<<철학자들의 모순>>에서는 그리스와 그리스-이슬람 철학이 근거로 삼은 전제 스무가지 든 다음, 삼단논법으로 분해함.
이 때 인과관계 개념 반박
→ 과학이라는 큰 체계 전체 평가 절하함
어떤 것도 다른 현상의 원인이 아니라면 의미있는 패턴을 찾으려고 자연계를 관찰할 필요가 없어짐.
오로지 신의 듯만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며 계시를 공부해야 하고, 울라마에 귀기울여야 함.
→ 이슬람 세계에서 그리스 사상에 기반을 둔 이슬람 철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 침몰함.
4) 영적 위기 맞은 가잘리
- 신의 존재 느끼지 못함을 문제로 인식(수피들의 문제의식) → 은둔 → 학자들 말이 옳지만 수피들이 더 옳다 선언
- <<행복의 연금술>>, <<종교과학의 부활>> 저술하여 정통파 신학과 수피즘 통합함. → 수피즘 존중받게 됨.
사람들은 점차 공동의 믿음으로 응집하게 됨.
이 시기쯤 이슬람의 여성의 지위도 변했을 것
- 초기 이슬람에서는 그 이후 시대나 오늘날 이슬람세계보다 여성이 더 독립적이며 공적인 분야에서 큰 역할을 맡음
(카디자-성공한 사업가/ 아이샤-주요 정당 이끌며 전장에서 군대 지휘/ 우마르는 메디나의 시장 관리하는 직책으로 여성 임명하기도 함/하디스의 권위자였던 하프사, 움 알 다르다, 압둘 라흐마 등)
- 공적 영역이 아닌 개인의 영역으로 여성을 격리하는 관습은 비잔티움과 사산 제국에서 비롯되었을 것
이슬람력 4세기(서기 1000년) 무슬림 여성들은 사회생활 통로 좁아짐.
- 가잘리의 <<종교과학의 부활>>: 결혼과 가정생활, 남녀의 예의 논함. 사회적인 세계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구분하고 여성을 사적 영역에 가두고 남성에게 공적 영역을 넘겨줌.
"여성은 집에 안채의 내실에 머무르며 실 잣기를 해야한다. 과도하게 밖으로 드나들어서는 안된다. 남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남편을 보호해야한다. 남편의 허락 없이는 집에서 나가지 말아야 하며 허락을 받아 밖으로 나갈 때에는 천으로 자신을 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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