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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의 역사: 독일 빌헬름 2세 비스마르크를 수상직에서 해임하다 본문
1890년 3월 18일 독일 빌헬름 2세,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수상직에서 해임하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빌헬름 1세 때 재상으로 취임한다. 취임 후 첫 연설 때 철과 피로 독일 통일을 이루할 것을 주장하며 군비 확장을 추진하고, 이 연설로 철혈재상이라 불린다.
프로이센은 이미 몇번이나 놓친 기회를 잡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하며, 계속해서 버텨야 합니다. 빈 조약에 따른 프로이센의 국경선은 국가가 건전하게 생존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당면한 큰 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과 피로만 해결이 가능합니다!
당시 독일은 관세 동맹을 주도한 이래 북독일을 중심으로 통일을 추진하려는 프로이센의 '소독일주의'와 신성로마제국의 후광을 입고 있으면서도 가장 세력이 강한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전독일이 하나로 뭉치자는 '대독일주의'가 통일의 방식을 두고 맞서고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소독일주의를 지향했다. 자유 협상이 아닌 무력으로 독일 통일을 달성하길 원하였으며, 오스트리아에 대항해 프로이센의 국익을 얻고자 했다. 비스마르크는 의회를 해산하며 세금을 거두어 군비를 증강한다. 또 러시아,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과 외교 접촉을 통해 오스트리아를 고립시키는 국제 구도를 짜는 한편, 오스트리아를 자극해 전쟁을 일으키고자 한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7주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게 되고, 당시 독일의 통일을 원치 않던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서 독일은 통일을 이룩한다. 빌헬름 1세는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한다. 통일 후 비스마르크는 평화지향적인 외교와 독일 안정을 위한 내치에 힘썼다. 대외적으로는 프랑스를 고립시키고 열강 간의 전면전을 억제하는 균형적인 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빌헬름2세가 즉위하면서 상황은 격변한다. 그는 비스마르크 체제에 안주하는 대신 동유럽에서 서아시아를 잇는 영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의 적극적인 팽창을 선택했다. 1890년 3월 18일 비스마르크는 물러나게 되고 빌헬름2세의 팽창정책은 세계 대전을 유발한다.
출처- 세계사톡 4편 <근대의 질주>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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