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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 독일사] 봉건국가의 발전 (독일)

오늘내일모레 2024. 5. 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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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링겐, 프랑켄만 봉건제 有

9세기 카롤링거 왕권 약화 → 부족공 세력 강화

 

  프랑켄 콘라드
작센왕조

:퓌르스텐 
대귀족층 육성

- 각 공국의
부족공에 대항
작센공 하인리히 1세

오토 1세: 
롬바르디아 지방 병합, 부르군드 왕국 보호 하에 둠
955 레히펠트에서 마자르족 격파
962 아헨에서 대관식, 도유식 → 신성로마제국 성립 

+ 성직자 서임권 장악


**신성로마제국의 한계: 
1. 현실적으로 봉건제후세력 분립
2. 이탈라이에 야망 → 교황과 충돌 불가피
3. 유럽 각지의 왕가 영지 확보, 세력 유지에 집중했으므로 제국 내적 통합은 2차적 문제 


오토2세

오토3세

하인리히2세

살리에르 왕조 프랑켄 콘라트 2세:
부르군드 왕국 병합
 '미니스테리아레스' 육성- 농노 출신, 전사 또는 행정 관리 훈련 → 귀족과 혈연관계, 이해관계 맺지 않음


하인리히 3세:
남부 작센, 튀링겐에 성채 축조
슈바벤 왕령 출신 가신에게 이를 지키게 함 (왕권 강화책)
1046 독일 전체 평정, 로마에서 제관


하인리히4세: 카노사의 굴욕

하인리히 5세: 1122 보름스 협약
                       (보름스 협약 이후 벨펜공가, 호헨쉬타우펜 가 대립 지속
                         →이탈리아에 파급 : 겔프(교황파) 대 기벨린(황제파))

로타르 2세 
호엔쉬타우펜 왕조 프리드리히 1세:
독일 봉건국가로 조직 → 대제후의 영지 내 자유재량권 인정/ 신속 요구
혼인 → 부르군드 접수
이탈리아 진출 → 교황과 충돌, 롬바르디아 도시 동맹 결성
                        → 1176 레냐노 전투, 1183 콘스탄츠강화조약(이탈리아 도시국가 완전 자치 허용)
3차 십자군전쟁 참여


하인리히 6세

벨펜공 오토- 오토 4세

프리드리히 2세: 
시칠리아 출신
인노켄티우스 3세 - 프리드리히2세 후원 
6차 십자군- 술탄과 협약 → 성지 회복
중부 이탈리아 영토 침입한 교황 격파
 - 1231 멜피헌장: 시칠리아, 중부 이탈리아 집권적 통일국가로 재편성하고자 
   1231 독일 제후의 이익위한 헌장 → 지방제후에게 독립과 주권 부여
 - 멜피헌장과 비슷한 내용을 롬바르디아에도 적용 → 롬바르디아 동맹 재결성 → 저항
 
독일 기사단- 동프로이센 수여 → 동진 → 프로이센 독일화 


 콘라트4세
대공위시대  
합스부르크 가문 루돌프:
교황령 요구 포기 - 교황의 지지 
중앙집권 시도 X

독일제후- 영방국가 형성, 도시- 도시동맹, 이탈리아- 정치 분열 
룩셈부르크 가문 칼4세

1356 황금문서에 의거한 선제후에 의한 선출 →  황제권의 쇠퇴  
합스부르크 지그스문트 

 

→ 영방국가 성립(프리드리히 2세때 싹틈, 13-14세기 독립 경향) : 과도기적 신분제 국가 형태

     최종심적 재판권, 화폐권, 충성권, 화폐주조권, 관세 징수권 등 권한

     신분제 의회 소집권 장악

     시민계급의 반항에 대해  '지배자의 징세권 불가 양도' 로마 주권 이론으로 일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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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시칠리아- 프리드리히 2세 사망후 앙쥬백샤를 통치 

→ 시칠리아- 아라곤 피터 3세 vs 앙쥬백 샤를 → 아라곤 피터 3세 승리 

 

 

 

이후 

막스밀리안 1세- 왕조적 제국으로 팽창

칼5세- 아우크스부르크화의(1555)

페르난디드 1세- 카토 감브레지 조약(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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