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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사] 백년전쟁의 원인, 전개과정 내용정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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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사] 백년전쟁의 원인, 전개과정 내용정리

오늘내일모레 2024. 5. 3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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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전쟁(1337-1452)

원인
1. 왕위계승문제


필립 6세 왕위 즉위
→ 에드워드 3세: 더 가까운 왕위 계승자 주장(but 에드워드 3세 - 가스코뉴 공령 영주로 신종서약)



2. 프랑스 내 영국령
: 헨리 3세- 루이9세에게 '가스코뉴'얻는 대신 프랑스 내 영국령 포기한다는 요구 → 승인


3. 플랑드르 지배권
: 도시반란 많이 일어나자 플랑드르백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프랑스 왕의 도움받음
영국 왕 입장에서는  플랑드르가 주요 모직 원료 수출지이므로 프랑스 왕이 지배하는 것 묵과할 수 없었음


→ 필립 6세의 법률가: 에드워드 3세의 신종 서약에 하자 있으므로 다시 할 것 요구
(당시 에드워드 3세는 스코틀랜드와 전쟁 → 프랑스가 스코틀랜드 지원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상황)
→ 거부

→필립 6세: 가스코뉴 지방 몰수 선언
   에드워드 3세: 선전포고


전개 - 백년전쟁 전기

프랑스 핵심 전력: 중무장한 봉건귀족
영국의 핵심전력: 중무장 기사 + 롱보우 가진 자영농 출신의 보병대

1346 크레시 전투: 에드워드 3세 프랑스 격파, 칼레 함락, 흑태자 활약

1356 푸아티에 전투: 프랑스군 격파, 장과 아들 필립 사로잡음

1359 브레타니 휴전: 영국왕 프랑스 왕위 계승권 포기
                                 영국 입장에서 실질적 이익: 모든 봉건적 의무에서 면제, 칼레 아퀴텐 가스코뉴 완전히 소유




- 프랑스의 내환

1356 푸아티에전투, 1359 브레타니 휴전
에티엔느 마르셀 반란, 1358 자크리의 난

프랑스 당시 관료제 컸고 영국에 비해 왕령지 제어X, 신분의회 분화(북부, 남부 랑그도크, 일부 독자)
전쟁 수행 →  염세 설치, 인두세 설치(푸아즈 →  타이유), 돈 꾸거나 화폐 개주( → 시민계층 피해)


* 에티엔느 마르셀 반란:
푸아티에 전투  - 몸값 지불을 위한 삼부회 개최
파리 상인 조합장 에티엔느 마르셀 중심으로 세금 징수 개혁, 화폐 개주 중지, 삼부회 정기 소집 등 요구
→  왕 거부 →  에트엔느 마르셀 반란 →  귀족에 의해 진압


샤를 5세:
재정 정비
군대 재편성
삼부회 소집 않기 위해 징세 위한 행정기구 창설
영국과의 전쟁 →  가스코뉴 대부분 회복 



 
- 백년전쟁 후기
: 1396년 20년간 휴전
프랑스: 샤를 6세- 어린 나이에 즉위, 오를레앙 가문 vs 부르고뉴 가문
영국 : 리처드 2세 (헨리 4세에게 퇴출)
          헨리 4세 치세 혼란
          헨리 5세


헨리 5세: 1415 아젠쿠르 전투 → 대승
                1420 트로와 조약: 왕태자 샤를의 왕위 계승권 부인
                                              헨리 5세가 샤를 6세 딸과 결혼 → 프랑스 왕위 계승자

샤를 6세, 헨리 5세 사망 → 헨리 6세 프랑스, 영국의 왕위계승권 
→ 북부: 영국, 영국과 결탁한 부르고뉴
    남부: 왕태자 샤를 중심

1428 영국- 오를레앙 포위 
                  이 때 잔다르크의 출현
                  오를레앙군에게 자신감 부여 → 프랑스군이 영국군 몰아냄
                                                                     왕태자- 샤를 7세로 즉위


1435 아리스의 화약: 부르고뉴공 필립, 샤를 7세 화해
1450 노르망디, 1452 보르도에서 승리 

 



- 백년전쟁 결과

→ 영국 가스코뉴 지배 종식
     1452 백년전쟁 끝. 영국- 칼레, 그 주변 지역만 소유

백년전쟁으로 프랑스는 영국으로부터 영토 회복하였으며, 국민의식의 맹아 싹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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