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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 프랑크 왕국의 역사

오늘내일모레 2023. 12. 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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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왕국이 단명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원주지를 버리지 않음, 아타나시우스파로 개종


- 프랑크왕국의 역사

클로비스
: 메로빙거 왕조 창시자
 아타나시우스파로 개종
 갈리아 중부까지 영토 확장
 클로비스 사후 혼란


칼 마르텔
: 궁재, 실권장악
  732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의 공격을 막음


피핀
: 카롤링거 왕조
  교황과 제휴(스테판 2세) 
   cf) 동로마 황제 레오 3세가 726년 성상금지령을 내림
        당시 교황 - 게르만 교화하기 위해 성상 필요/ 이에 동로마 교회에서 독립하고자 함
        + 롬바르디아 팽창

→ 교황: 피핀의 도유식 거행
→ 피핀: 롬바르디아 격파, 교황령 기증 


샤를마뉴
: 1. 활발한 정복활동- 롬바르다, 색슨 정복/ 서로마 영토 대부분 획득 
      → 교구 설치, 국경 부근에 변경주 설치
           300개 주로 나누어 주백, 변경백 설치(지방관 파견) → 지방 분권화 초래

  2. 크리스트교 전파
 
  3. 800 레오 3세- 샤를마뉴를 서로마제국 황제로 대관
 
  4. 샤를마뉴 르네상스- 궁정학교 설치, 유능한 학자 초빙, 로마 문화 필사


샤를마뉴 사후 영토 분할 상속
→ 843 베르됭조약:
동프랑크(루이 독일왕),
중프랑스(로테르, 황제 칭호 → 사망하자 중프랑크 두고 각축 → 870 메르센조약),
서프랑크(찰스 대머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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