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저
이 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요약한 내용입니다.
산업, 혁명, 민족주의(이슬람력 1163년-1336년/ 서기 1750-1918년)
1. 산업화
- 산업화의 성공 여부 -사회적 맥락과 관련
왜 산업화는 유럽에서 성공을 거두었을까?
- 이슬람에서 3세기 전 증기기관이 발명되었지만, 이는 쇠꼬챙이 돌리는 동력으로 쓰였을 뿐. 큰 변화 일으키지 못함. 이미 수백명의 장인이 효율적인 교역망을 이용하여 소비재 유통.
- 중국에서 10세기 무렵 생산을 기계화하고 물건 대량 생산 할 만한 모든 기술 있었지만 중국인들은 그 기술을 대량 생산에 사용하지 않음. 중국은 인구과잉이었기 때문에 노동력 저렴하였기 때문에 굳이 대량생산 필요성없었음.
- 기술에 무관심한 것은 그 사회의 기능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기 때문.
- 유럽:
증기기관 발명(개인 광산 소유주들이 탄광 수직굴에서 물빼기 위해 사용하던 증기 동력 펌프에서 진화한 발명)
→ 기관차 발명(광석 시장에 내놓도록 경쟁자보다 빠르게 강이나 항구까지 운반 필요), 철도 발명, 직조기 발명 등으로 이어짐.
산업혁명- 일상생활 역시 변화시킴(도시로의 인구 증가, 자연의 시간표지보다 시계나 달력 상 시간 중요, 소규모 가족 단위, 세대 간 연결고리 약화), 유럽의 개인주의와 결합
- 이러한 산업혁명의 변화- 이슬람세계와 부합하지 않아 쉽게 흡수 어려웠음
대표적: 오스만 사회
오스만 -제조업이 조합과 연결, 조합은 수피교단과 연결됨.(산업화-제조업과 수피교단의 연결고리 단절 의미)
여성의 경우 사적 공간으로 격리됨.
(산업혁명 이후 유럽은 여성들 역시 공장으로, 상점 등으로 일하러 나감)
이러한 산업화의 흐름은 이슬람 문명에게 시간이 필요하였으나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음
- 이란의 산업화: 1840년대 이후 에미르 카비르 수상 근대화 계획 수립
세속 공립학교망 구축, '지혜의 집(다르 알 푸눈)' 설립하여 외국어, 과학, 기술, 서양문화사 가르침.
세속 교육기관 졸업생들은 근대화된 정부 관료 체계와 군대에 임명
2. 입헌주의
- 이란: 다르 알 푸눈 출신 새로운 계급 입헌주의 수용
근대 지식인들 당시 카자르 왕조에 불만.
당시 카자르왕조- 이란 경제 이권을 외국인들에게 팔아먹고 사치와 유흥 즐김
이러한 분노은 자말루딘의 담배불매운동 당시 극에 달함.
이후 근대주의자들 왕의 권력 제한하고 국민이 국정에 목소리 낼 수 있도록 보장받는 헌법 요구
→ 1906년 카자르왕조 샤 무자파르 알 딘 굴복
의회 '마잘리스' 구성, 이란에서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기반 닦음.
3. 민족주의
- 민족주의: 확실한 국경과 단일 중앙정부, 그 정부의 법 체계, 단일 통화, 군대, 경찰력 등이 갖춰진 영토 의미
민족주의 개념의 등장
- 18세기 독일 철학자 요한 헤르더
: 세계가 다앙한 문화적 독립체(폴크스/ 민족)로 구성. 각 독립체마다 공통의 언어, 전통, 관습, 역사 등 존재.
(헤르더는 민족이 서로 다르고 어느 민족의 가치 기준으로 다른 민족 판단할 수 없다고 함)
- 피히테
: 인류가 별개의 민족으로 무리지어 있으며 각자는 공통의 정신으로 묶였다는 것에는 동의, 그러나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의견 제시(죽은 프랑스어보다 독일어 활기찬 언어라는 의견 제시)
이는 게르만 민족주의에 영향
- 독일의 민족주의 성장
비스마르크- 나폴레옹3세 자극하여 파리 정복, 알자스 로렌 지방 얻음 → 게르만 민족주의
- 이탈리아의 민족주의 성장
마치니: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외세의 간섭에서 구출하기 위해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 개인은 오직 집단의 구성단위로 행동할 뿐 각자의 개성을 민족을 위해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 펼침
이후 동유럽으로 번져나감.
- 미국의 민족주의 성장
남북전쟁 이후 '미합중국' 이라 부름. (이전: 이들 통합된 국가들)
공유되는 종교나 역사, 전통, 종족의 정체성에서 민족성 찾는 대신 공유하는 원칙의 미덕과 과정에 대해 공유하는 충성으로 '민족' 될 수 있다고 제안.(신념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
- 시오니즘:
여타 다른 유럽 민족주의와 다른 점- 유대 민족에게는 영토 없었음.
신이 최초의 히브리인들에게 다른 섬을 섬기지 않으며 그의 명려에만 복종하는 대신 가나안의 땅 약속 주장
→ '그들의' 땅에 아랍인들이 살고 있으며 오스만튀르크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되찾을 권리 주장
1897년 오스트리아 저널리스트 테오도르 헤르츨 '국제 시오니스트 연합' 창립
- 오스만 제국의 민족주의:
당시 오스만 세계 점차 줄어들고 있었음
(알제리- 프랑스가 흡수, 이집트- 이름만 존재할 뿐 영국이 차지)
1883년 오스만왕조 유럽 세력의 컨소시엄과 발타리만 조약 체결
: 오스만 영토 안에서 오스만과 유럽 세력 사이에 불평등한 조건을 규정한 불평등 조약
이후 오스만 제국 안에서 근대화 움직임 : 탄지마트
탄지마트의 내용
- 새로운 중앙정부 관료 체계(프랑스 모델)
- 국가의 세속 법정(전통 샤리아 법정 대체)
- 형사 재판법(나폴레옹 법전에 기초)
- 자유무역 지지하는 상업 규칙
- 징병제도(프러시아의 군사체계 모델/ 데브시르메 대체)
- 공립학교 설립
- 단일 세금 징수기관
- 인종과 종교에 관계 없이 모든 오스만 국민이 '명예와 생명, 재산' 침범할 수 없으며 보호받을 것이라는 보장
→ 사실상 유럽식 개혁
탄지마트 - 세속 근대주의자, 이슬람의 오랜 수호자(울라마) 대치.
한동안 근대주의자 우위를 차지함.(1876년 헌법 채택)
하지만 전통주의자들 술탄의 권력 복원회 헌법 폐지하고 절대왕정 복귀하도록 함
- 아르메니아 공동체
: 튀르크 국경안에 살고 있었음.
그리스도교 소수자. 고리대금업에 종사. (대금업 주로 소수 공동체의 독점분야가 되는 경우 많았음- 유대인의 경우)
서유럽 기업들 아르메니아인들과 동업하고자 함.
1894-1896년 반아르메니아 학살 잇달아 발생.
- 혼란스러운 시기 새로운 세대의 활동가 등장 : 청년 튀르크당
1908년 오스만제국의 마지막 술탄 몰아세워 헌법 복원 (술탄 명목상 왕으로 전락)
하지만 청년 튀르크당 - 여러 갈래였음 (일부 제국 분권화 하여 소수파 권리 보장 주장/ 일부 튀르크 민족주의 주장)
튀르크 민족주의 내세운 이 분파는 군국주의 정당 '연합진보위원회(CUP)'로 통합
- 연합진보위원회: 튀르크족의 국가체제로 대체 주장(다문화적 제국이라는 오스만 생각 근절)
이 시기 오스만 제국 혼란스러운 상황이어짐.
불가리아 오스만제국에서 떨어져나가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병합 , 오스만왕조 크레타 섬 잃음, 아르메니아 활동가들도 아르메니아 자주 민족국가 개척 주장
1912 발칸전쟁 → 옹스만제국 이스탄불,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잃음
→ 1913 연합진보위원회 쿠데타 일으켜 이스탄불 장악, 수상 암살, 술탄 폐위
→ 오스만 터키 일당 독재국으로 바꿈(탈라트 파샤, 엔베르 파샤, 제말 파샤 주도)
- 1차대전의 발발:
연합진보위원회 독일이 승리할 것으로 판단
전쟁 발발 8개월 후 러시아 병력이 오스만 제국 북쪽 국경 위협
→ 강제 퇴거령: 러시아 국경 인근의 아르메니아인 재배치/ 러시아와 공동 작전 펼치지 못하도록 함
이때 '재배치'되는 사람들 실제로 강제 행진 하다가 잔인하게 죽임당함
사상자의 수 대략 100만명이 넘음. 조직적인 학살 이루어짐.
참호전 교착상태 이어짐.
→ 영국: 소아시아 통과해 뒤에서 적의 주축 세력 공격하고자
→ 그렇게 하기 위해선 오스만 무력화해야 함. 하지만 연합군의 습격 실패
- 한편 영국, 오스만의 다른 약점 이용하고자 함.
1) 아랍 민족주의 운동 : 튀르크에서 독립하고자 함.
이 때 두드러지는 두 가문(이븐 사우드 가문, 하시미테 가문)
영국- 사우디 셰이크(이븐 사우드 가문) 찾아가 오스만 공격하도록 제안, 메카 통치하던 샤리프 후세인(하시미테 가문)에 정보 장교 파견
→ 두 집안에 오스만과 상대로 싸우기만 하면 독자적인 왕국 세울 수 있도록 도울 것 약속
이때 마크 사이크스(영국),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프랑스)는 유럽 세력 간 아랍 영역 나누어가질 것 합의
: 사이크스- 피코 협정
2) 시오니즘 세력 이용
: 1917년 영국 외무부 장관 아서 제임스 밸푸어가 영국 은행가이자 시오니스트 로스 차일드에게 편지 작성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의 고향 건설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살펴볼 것이며 목표달 성을 위해 노력할 것"
- 영국은 동일한 영토를 하시미테, 사우디, 유럽의 시오니즘 세력에 각각 약속함. 한편, 사실상 영국과 프랑스는 그 영토를 그들끼리 나눠갖기로 한 상태.
- 영국과 프랑스의 작전 훌륭하게 먹힘.
연합진보위원회는 소아시아 밖 영토 모두 잃음. 팔레스타인, 대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영국에 양도.
- 탈라트, 엔베르, 제말 파샤 모두 이스탄불에서 도망. 연합진보위원회 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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